한반도와 평화나눔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018년 제51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관리자 │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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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51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2018년 1월 1일)


 이민과 난민: 평화를 찾는 사람들


1. 평화를 빕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 모든 민족에게 평화를 빕니다! 성탄 성야에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선포한 평화1)는 모든 이, 각 개인과 모든 민족, 특히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간절히 열망하는 것입니다. 제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기도하는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 2,250만 명의 난민을 포함한 2억 5천만 명 이상의 전 세계 이주민들에 관하여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전임 교황이신 베네딕토 16세께서는 그들을 “평화롭게 살 곳을 찾고 있는 남녀노소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그곳을 찾으려고 그들은 기꺼이 목숨을 걸고 멀고도 험난한 여행길에 오릅니다. 그들은 역경과 고난을 견뎌야 하며,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설치해 놓은 울타리와 장벽에 직면합니다.


 

전쟁과 기아를 피하여, 또는 차별과 박해와 빈곤과 자연 훼손으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그 모든 사람을 자비심으로 끌어안읍시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하여 마음을 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다시 한번 안전한 집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하려면, 먼저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환대하는 데에는 구체적 헌신, 협력 네트워크와 선의, 깨어 있는 자세와 연민 어린 마음이 있어야 하며, 언제나 제한적인 자원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때때로 현실의 수많은 문제들에 덧붙여지는 새롭고 복잡한 상황들을 책임 있게 관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부 지도자들은 예지의 덕으로써, 환대와 증진과 보호와 통합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강구하고, “올바로 이해된 공동선을 해치지 않는 한계 내에서, 새로운 공동체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3) 지도자들은 자신의 공동체에 대하여 명확한 책임을 지니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합법적 권리들과 조화로운 발전을 보장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탑을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계산을 잘못하여 완성하지 못한 경솔한 건축가처럼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4)


 

2. 왜 그렇게 많은 난민과 이민이 있을까요?

 

베들레헴에서 천사들이 평화를 선포한 지 2천년을 기념하는 대희년에,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지난 20세기의 특징인 “끝없이 이어지는 끔찍한 전쟁과 분쟁, 대량 학살과 인종 청소5)의 결과의 하나로서 이재민의 증가를 지적하셨습니다. 오늘날까지, 우리의 새로운 세기는 어떠한 참된 돌파구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무장 투쟁을 비롯하여 다른 형태의 조직적 폭력들이 국경 안팎에서 민족 이동을 계속 촉발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로, 주로 “더 나은 삶을 간절히 바라고, 흔히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한 ‘절망’에서 벗어나 떠나고자6) 이주를 합니다. 그들은 가족과 결합하려고 또는 직업이나 교육의 기회를 찾아 떠납니다. 이러한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제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지적하였듯이, “자연 훼손으로 악화된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이주가 증가7)하는 비극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규적 통로로 이주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안전도 기회도 제공하지 않고 모든 합법적 통로는 비현실적이고 가로막혀 있으며 너무 느린 것으로 보일 때에, 주로 절박한 심정으로 다른 방도를 선택합니다.


 

그들이 향하는 많은 목적지 국가에서는,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거나 새 입국자들을 받아들이는 비용이 크다고 역설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모든 이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인간 품위를 깎아내리는 과장된 외침이 확산되었습니다. 아마도 정치적 이유들 때문에 평화를 조성하는 대신에 이주민에 대한 두려움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폭력과 인종 차별과 외국인 혐오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안전을 염려하는 이들에게 크나큰 근심거리입니다.8) 

 

국제 사회의 모든 지표들에 따르면, 전 세계적 이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위협으로 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것을 평화를 건설하는 기회로서 확신을 갖고 보아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3. 관상하는 시선으로


믿음의 지혜는 관상하는 시선을 증진하여, 다음 사실을 인정하도록 이끕니다. “이민이든 그들을 환영하는 현지인이든 모두 한 가족이고, 교회의 사회 교리가 가르치듯 모두 똑같이 보편적 목적을 지닌 지상의 재화를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대와 나눔의 바탕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9) 이러한 말들은 새 예루살렘에 관한 성경 이미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사야 예언서(60장)와 묵시록(21장)은 모든 민족들에게 성문이 언제나 열려 있는 도시를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그 도시를 보고 놀라워하며 보화들로 가득 채웁니다. 그 도시를 이끄는 군왕은 평화이며,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다스리는 원칙은 정의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들을 이 관상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집 안과 거리와 광장에 살고 계시는 하느님을 볼 줄 아는 신앙의 눈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는 연대와 형제애를 증진해 주시고 선과 진리와 정의를 향한 열망을 북돋워 주십니다.”10) 달리 말하자면, 평화에 대한 약속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한 시선으로 이민과 난민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들이 빈손으로 온 것이 아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용기와 재능과 에너지와 열망, 그리고 고유문화라는 보화를 가지고 옵니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들을 받아들여 준 나라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우리는 또한, 심지어 자원이 부족한 곳에서조차, 이민과 난민에게 마음과 문을 여는 무수한 개인, 가정, 공동체의 창의력, 끈기 그리고 희생정신을 보게 됩니다.

 

또한 이 관상하는 시선이 공공의 선익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식별을 이끌고, 인류 가정의 모든 구성원이 필요로 하는 것들과 각 사람의 행복을 염두에 두면서 “올바로 이해된 공동선을 해치지 않는 한계 내에서11) 환대의 정책을 추구하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미 싹트고 있는 평화의 씨앗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그것들이 잘 자라도록 돌보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가끔 이민과 난민에 관한 갈등으로 분열되고 양극화되어 있는 우리 도시들은 평화를 위한 워크숍 장소로 변할 것입니다.